
금값 8% 폭락하며 올해 누적 상승분 전부 소멸… 중동 분쟁 속 ‘위험 회피 자산’이 왜 ‘기능 실패’했을까?
전쟁과 인플레이션은 본래 금의 가장 충실한 동맹이어야 하지만, 이번에는 금이 투자자들을 완전히 실망시켰다.
이번 주 월요일, 현물 금 가격은 하루 만에 8% 급락해 온스당 4122.26달러를 기록했고, 뉴욕 금 선물 가격은 하루 만에 9.74% 하락해 온스당 4165달러를 기록했다. 현물 은은 하루 만에 약 8% 하락해 온스당 62.49달러를, 뉴욕 은 선물은 하루 만에 10.0% 하락해 온스당 62.64달러를 기록했다. 현물 백금은 8% 이상 하락해 온스당 1773.47달러를, 현물 팔라듐은 약 5% 하락해 온스당 1346달러를 기록했다.

이스라엘-미국 연합군의 이란 공격 개시 이후, 금 가격은 전쟁 이전 고점 대비 약 24% 하락했다. 이 기간 동안 금을 보유한 투자자들의 수익률은 시가총액이 가장 작은 마이크로캡 주식에 최소 규모로 투자한 경우보다도 낮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분석에 따르면, 이번 금의 ‘기능 상실’ 근본 원인은 지난 1년간 금이 과도하게 과열된 거래 자산으로 전환됐다는 점이다. 전쟁 발발 후 투자자들은 리스크 회피 목적이나 레버리지 부채 상환을 위해 가장 눈에 띄는 자산으로서 금을 우선 매도하기 시작했다. 달러 강세와 실질금리 상승 같은 기술적 요인이 부분적으로 설명력을 갖긴 하나, 이 정도 규모의 폭락을 설명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
더 깊은 구조적 압력도 존재한다. 중동 전쟁 국면은 각국 중앙은행의 지속적 금 매입 논리를 흔들었으며, 인도 등 시장의 실물 금 보유자들이 오히려 매도로 전환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과열 거래 정리 과정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현재로서는 시장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달러 및 실질금리, 모두 주요 원인이 아님
시장에서는 여러 기술적 설명이 유행하고 있으나, WSJ 분석에 따르면 이들 설명은 어느 하나도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우선 달러 요인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전쟁 발발 후 미국이 석유 순수출국이라는 지위 덕분에 달러가 급등했고, 이는 달러 표시 금 가격을 이론적으로 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파운드화 기준 금 가격 역시 약 11%, 유로화 기준 약 10%, 엔화 기준 약 11% 하락했으며, 특히 지난 목요일 달러는 당일 약세를 보였음에도 금은 분쟁 이후 최대 일일 하락폭을 기록했다. 이는 달러 요인설을 완전히 무력화시킨다.
실질금리 요인 역시 설명력이 제한적이다. 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 금리를 동결하거나 오히려 인상할 것이라는 시장 전망이 확산되면서, 이전 예상이었던 2~3차례 금리 인하 전망이 크게 수정됐고, 이에 따라 10년 만기 인플레이션 연계 국채(TIPS) 수익률이 상승했다. 이는 금의 상대적 매력도를 일부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금과 TIPS 수익률 간 전통적인 음의 상관관계는 이미 붕괴됐으며, 오히려 장기간 동일 방향으로 상승하는 사례가 많았다. WSJ에 따르면 최근 15거래일 중 단 11일만이 역방향 움직임을 보였고, 실질금리가 이번 금 하락폭을 설명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핵심 원인: 과열 거래의 집단적 탈출
WSJ는 이번 금의 급락을 설명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는 하나뿐이라고 지적한다. 바로 심각하게 과열된 거래가 가속화되며 붕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분쟁 속 주식시장 움직임처럼, 이전 상승 폭이 클수록 투자자들의 철수 시 하락 폭도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
지난 1년간 금은 막대한 투기 자금을 끌어들였다. 이 추세는 주요 금 ETF인 SPDR 골드 트러스트(SGOL)의 보유량 변화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작년 가을부터는 금 가격이 소매 투자자들이 열광했던 인기 주식들과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투기 성향이 매우 두드러졌다.
일부 투자자들은 자금을 차입해 금을 추가 매수했으나, 시장의 리스크 기피 심리가 반전되자 이들은 동시에 금을 매도하고 주식 공매도 포지션을 회복해야 했고, 이는 ‘발밑 빼기’ 효과를 초래했다. 금 시장의 레버리지 규모는 정확히 산정하기 어렵지만, 투기 자금의 대규모 유입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자금이 잇따라 철수함에 따라 금 가격의 하방 압력은 불가피했다.
중앙은행의 금 매입 논리 흔들림
투기 자금의 철수 외에도 중동 전쟁은 금의 가장 중요한 구조적 매수자인 각국 중앙은행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
분석에 따르면, 지난 수년간 금의 강세는 서방이 러시아 자산을 동결한 후 각국 중앙은행이 외환보유액 구성에서 달러를 금으로 전환한 데 크게 기인했다. 이 흐름은 또 다른 자금의 추종 매수를 유도했다.
그러나 이란 전쟁은 이러한 논리를 완전히 흔들었다. 외환보유액의 핵심 기능은 경제적 충격 발생 시 수입 지급 능력을 보장하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번 전쟁으로 인한 석유 공급 차질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글로벌 석유 시장 공급 충격으로 규정했다. 석유 수입국 입장에서는 지금이 비상 시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수입을 유지해야 할 때이며, 금을 추가 매입할 시기가 아니다. 또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돼 걸프 지역 산유국의 석유·가스 수출이 차단될 경우, 이들 국가는 오히려 금 매수자에서 매도자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
실물 수요 측면에서도 압력이 크다. 인도에서는 주민들이 오랫동안 상당 규모의 저축을 금 형태로 보유해 왔다. 그러나 유가 급등이 현지 경제에 충격을 주면서, 이러한 실물 보유자들도 자금 조달을 위해 매도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분석에 따르면, 위와 같은 압력 요인들은 대부분 일시적 성격을 띤다. 과열 거래가 정리된 후에는 금이 이론적으로 다시 인플레이션, 금리, 지정학적 리스크 등 기본적 요인에 의해 움직이는 흐름으로 복귀할 것이다.
하지만 핵심 문제는 아직 얼마만큼의 매수자가 시장에서 빠져나가야 하는지 여부이며, 이는 현재로서는 여전히 미지수다. 만약 중앙은행처럼 규모가 큰 구조적 매수자마저 매도에 나선다면, 금이 다시 빛을 되찾기 전까지는 훨씬 더 긴 조정 기간을 겪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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